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essay

이해받길 원하는 자와 받아들여주길 원했던 자

 우리는 많은 대화를 나눴고, 그 속엔 언제나 나의 말이 있었다. 나는 늘 내 마음을 설명하려 애썼고, 그 설명 끝에는 어김없이 이해받고 싶다는 바람이 숨어 있었다. 이해받는 순간 마음이 풀리는 나는, 우리가 갈등을 겪을 때마다 대화를 통해 풀어나가려 했다.

하지만 어느 날, 그는 말했다. "그만하자." 그리고 그 말 끝에는 덧붙여졌다. "나는 더는 못하겠어."

 

 그 말이 처음엔 이해되지 않았다. 왜 우리가, 이토록 많이 대화해 온 우리가, 단지 말 몇 마디로 끝나야 하는 걸까. 나에겐 말이 곧 애정이었고, 싸움 끝의 대화는 언제나 우리를 다시 잇는 다리였다. 그런데 그는 그 다리를 걷는 걸 힘들어했고, 대화 자체가 또 다른 부담이었단다.

 

그때 처음 느꼈다. 아, 우리는 서로 너무 달랐구나.

 

 나는 이해받고 싶었다. 내 감정, 내 생각, 내 분노까지도 "그럴 수 있지"라는 말 한마디에 녹아내리기를 바랐다. 그래서 나는 끊임없이 설명했다. 왜 내가 화났는지, 왜 이게 나에겐 중요했는지, 왜 그에게 그걸 알아달라고 말하는 게 내겐 필사적이었는지를. 하지만 그는 받아들여지길 원했다. 자신의 입장을 말하지 않아도, 정리가 되지 않아도, 그냥 있는 그대로 두길 바랐다. 나처럼 분석되거나 논리적으로 접근당하는 것이 아니라, 조용히 곁에 두어지기를. 그에게 내가 한 말들은 설득이 아닌 압박이었고, 궁금함은 관심이 아니라 간섭으로 들렸던 것 같다.

 

이해와 수용은 다르다는 걸 나는 이제야 조금 알 것 같다. 이해는 질문이고, 수용은 침묵이다. 이해는 다가가는 행위이고, 수용은 있는 그대로 두는 일이다. 나는 그를 더 잘 알고 싶었지만, 그는 있는 그대로 존중받고 싶었던 것이다. 우리는 서로 애썼다. 그도 나도. 하지만 방향이 달랐고, 방식이 달랐고, 바라보는 지점이 달랐다. 그 다름을 맞추는 일은 어느 한 사람이 일방적으로 짊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.

 

 그래도 나는, 우리가 잘못된 것은 아니었다고 생각하고 싶다. 단지 서로 다른 언어를 가진 두 사람이었을 뿐이라고. 다음에 누군가를 만나게 된다면, 나는 그 사람이 이해받길 원하는 사람인지, 받아들여지길 원하는 사람인지 더 깊이 살펴볼 것이다. 그리고 나 자신도, 나의 방식이 사랑의 전부가 아니란 걸 기억할 것이다.

 

 사랑은, 다르다는 걸 인정하는 것에서 시작한다는 걸, 나는 값비싼 경험을 통해 배웠다.